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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충청] 그곳은 사람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다 08.06.11 18:21
서민식 HIT 1653


제목 : 그곳은 사람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다


요즘 동무들을 만나면 이 질문을 많이 듣는다.
"대통령이 바뀌니 더 힘들지 않냐?"
왜 그렇게 묻는지 알지만 특별하게 더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뭐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어 보이니까.

나는 나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대단히 부정적이거나 염세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세상을 바꾸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다.
하긴 언제는 쉽다고 생각했겠는가.

이 나라 사람들이 흔히 예상하는 것처럼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적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한다. 당연하다. 이 나라 노동자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이주노동자들을 쓰려고 하진 않을 테니까.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먹는 것부터 뭐 하나 까탈스럽지 않은 게 없으니 당연하지 않겠나.
언젠가, 어떤 기자가 이주노동자 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보기에도 그런 걸.

한 달에 팔십만 원, 구십만 원 받고 일요일에도 오후엔 꼬박꼬박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흔하다. 토요일? 그냥 일한다.
그렇게 일을 하는 데도 어느 때부터인가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는다. 아예 주지 않는 달이 늘어난다. 서너 달 버티다가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사장을 찾아가 "돈 줘요"하면 그 날로 쫓겨난다. 돈? 돈은 받지도 못하고 나온다.
그렇게 받지 못한 돈이 이백만 원, 또는 삼백만 원 정도? 그 정도면 사장 집에 불을 지를만도 한데 그냥 곱게 나온다. 참 어이없다.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면서 예전 회사에 몇 번 전화를 한다. 찾아가기도 한다. 돈 달라고.
그러면 욕을 듣기도 하고, 언제까지 주겠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그런다. 언제까지 주겠다고 하면 기다린다. 하긴 기다려야지 달리 방법이 있나? 준다는 날짜에 예전 회사를 찾아가면 십만 원, 이십만 원 이렇게 받아온다.
그 이후에 다시 전화를 하면 줄 돈 다 줬는데 뭘 또 달라고 하냐는 말을 듣는다. 이백만 원 아니냐고 하면 니가 회사에 끼친 손해가 얼마나 많은데 그딴 소리를 하냐고 한다. 다시 전화를 하면 경찰에 신고해서 당장 잡아가라고 하겠다고 협박도 한다.
이쯤 되면 월급을 떼이는 게 당연하다는 주변 동무들의 '조언'을 듣게 된다. '당연히' 떼이는 것이라는.

그러다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찾아온다.
얼마나 일 했냐? 받지 못한 돈이 얼마냐? 회사를 그만 둔 다음에 돈 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 이런 내 질문에 이주노동자는 꼬박꼬박 사장님이, 사모님이, 부장님이, 이런다.
불을 지르진 못해도 욕이라도 할 만한데 꼬박꼬박 사장'님'이다.

항상 이랬다.
여기까지는 항상 이랬다.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런데.
문득, 얼마 전부터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엔 노동청에 진정을 내고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이야기를 하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 사장이 돈을 입금했다. 쉽게 처리되진 않았지만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힘들어졌다.
사장이 노동청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냥 버틴다. 연락도 받지 않고 출석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사장이 노동청에 나오더라도 다짜고짜 욕이다. 그런 새끼들은 몽땅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고 한다.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예전엔 그렇게 욕하는 사장에게 은근히 협박도 했다. 사실 나야 제삼자 아닌가? 이주노동자가 강제출국을 당하든 말든 사장이 돈을 주든 말든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수수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해결한다고 해서 십 원짜리 하나 얻는 것도 없는데 나는 아무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내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할 계획인데, 그렇게 되면 당신도 속 깨나 썩을 거라고 협박을 하곤 했다. 그 돈 나하고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대신 그보다 더 손해 보게 하겠다고 협박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하면 먹혔다.

요즘은 아예 나오질 않는다.
나 혼자 노동청에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날이 늘었다.
간혹 나오더라도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배를 째라고 한다. 그런 사장이 늘었다.
세상이 바뀐 것일까?

이 나라 사람들이 흔히 예상하는 것과 달리, 이주노동자들에게 백만 원은 참 큰돈이다. 이 나라에선 한 식구가 한 달을 지내기도 버거운 돈이지만 어떤 나라에선 한 식구가 서너 달을 살기도 한다. 반년을 지낼 수 있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굉장히 큰돈이다.
그렇게 큰돈을 그냥 안 주려고 하는, 그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째라는 배에서 나오는 것일까? 모르겠다.
세상이 바뀐 것일까?

십년 만에... 대통령이 바뀌니까... 그이가 사장'님'들 편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해서... 그래서 배짱을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 이런저런 문제가 있던 사람이라... 나라님도 거짓말을 일삼고 그 자리까지 갔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러냐? 뭐 이럴 수도 있겠다.
그런 건 모르겠다.
그냥 세상이 바뀐 것인가 싶다.
잘 모르겠다.

서민식 |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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