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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다문화사회'라는 거짓과 도전 08.03.13 10:58
이주연대 HIT 1771


[야!한국사회] '다문화사회'라는 거짓과 도전



정정훈 / 공감 변호사

이민사회인 미국의 인종문제에 대한 비유는 '용광로'에서 '샐러드 그릇'으로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미국 사회가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된 진실>의 저자 데릭 존슨은 이 '샐러드 그릇'이라는 비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용광로'의 은유는 적어도 '누가 녹고, 소멸하는가?'라는 문제와 그 과정의 폭력성을 드러내지만, '샐러드 그릇'의 비유는 '거짓 관용'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므로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정부가 주도하는 '다문화' 담론이 유행이다. '다문화가족' '다문화주의' '다문화사회'. 정부는 '다문화'라는 브랜드로 이주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포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주민 정책의 대부분은 다문화사회로의 실질적인 변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혈통에 의한 국적 부여, 이중국적 불인정, 단기순환과 정주화 방지, 가족결합 금지 등 관련 정책들은 모두 혈통주의와 민족주의적 인식에 기대어 이 사회의 경계와 방어벽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주'의 바늘구멍을 통과하여 이 땅에서 살아가는 길은 귀화해서 한국인이 되거나, 한국인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다. 불법의 그늘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곧 돌아갈 '일회용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삶의 무늬'로서의 문화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다문화는 '미녀들의 수다' 또는 농촌 총각과 결혼한 '외국인 며느리'들의 이야기로 제한된다. 그렇게 제한적인 다문화정책마저 '문화의 공존'을 의미하기보다는, 문화들 사이에 위계를 설정하여 일방적으로 '투항'을 요구하는 것이 되기 쉽다. 이슬람 출신의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에서 한국 음식을 먹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은 분노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다문화사회'로의 제도적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한 채, '다문화' 담론들만이 무성한 이상한 현상의 결과는 다문화의 상품화다. 철학자 김영민이 지적하는 것처럼, '차이'(It's different!)는 광고 카피가 되고, 마케팅의 메시지가 되어 '이미지들의 잔치'로 둔갑한다. '다문화'가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의 실질적 의미는 버려진다. 상품화된 '다문화'는 얌전하게 '샐러드 그릇' 위에 놓여 구매자를 기다린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결혼의 상품화는 이러한 극단의 표현일 것이다.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유통되는 '다문화주의'는 실질적인 '다문화사회'로의 변화를 거부하는 '거짓'의 포석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진실로 지구화 시대에 불가피한 '다문화사회'로의 도전을 대면하자면, 이 논의가 중대한 '정치'적 문제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가?' '우리 사회의 구성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시민권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 적지 않은 갈등이 예상되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지만, 생산적인 대화가 시급한 문제들이다. 근본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정치적인 문제이므로, 더이상 행정적이고 기술적인 결정의 영역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최근 창조한국당이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을 18대 총선의 비례대표 후보로 확정했다고 한다. '다문화사회'로의 도전을 적극적인 정치 의제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정치의 차원에서 '다문화사회'라는 큰 그림을 두고 이중국적, 국적부여 원칙, 영주권 확대, 미등록 합법화, 노동 이주와 결혼 이주, 재외동포 문제에 관한 입장과 구체적 정책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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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8-03-12 오후 08:02:39  한겨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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