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안 제정’으로 노동계가 시끄럽지만 이 법안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다. 바로 1988년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딘 후 이제는 40만을 헤아리는, 그러나 아직까지도 차별 대우와 위험한 작업환경으로 고통받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약 10년전부터 정당한 권리획득을 위한 투쟁을 벌여왔지만 지난 2004년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은 이들의 목을 더욱 죄어 오고 있다.
지난해 4월 조직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합법적 조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노조 결성을 주도했던 아노와르 노조위원장은 노조 조직 직후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의해 연행됐다. 본지는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섀킬 아메드 샤킬(Shakel Ahmed Shakil)씨를 만나 우리 사회가 시급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인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지난 1992년 3월 한국에 처음 왔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면서 무언가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후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을 계속 해왔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작업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기술을 가르쳐주고 회사에 파견해주는 ‘산업연수생 제도’로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은 들어오자 마자 장갑 한 켤레 쥐어진 채 현장으로 투입된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상태로 위험한 현장에 투입되다보니 자연히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제대로 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 한국 내에 있는 약 40만명의 이주노동자 중 55%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지난 2003년 이주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제도인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들은 언제 붙잡혀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개선시켜 준다며 ‘고용허가제’를 실시했지만 이전부터 시행돼온 ‘산업연수생 제도’와 다른 점이 거의 없고 단속만 강화했을 뿐이다. 단속의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 ‘고용허가제’로 7만 7000명, ‘산업연수생 제도’로 3만 3000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새로 들어온다. 새로운 노동자를 데려오기 이전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인간적인 단속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에 힘써야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가 매우 많은데, 왜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처럼 위험한 생활을 하는 것인가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는 합법화된 기간동안만 일을 하고 돌아가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임금이 한국인 노동자의 42%밖에 되지 않으며 처음 접해 보는 환경 탓에 생활비는 훨씬 많이 들어 돈을 모으기가 힘들다. 합법화된 기간을 그렇게 넘기고 나면 부당해고와 단속 등으로 꾸준히 일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7~8년을 한국에 있어도 제대로 돈을 모을 수 있는 기간은 1~2년에 불과하고 그나마 1년 정도의 체불 임금이 있는 것은 기본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내의 시각은 어떠한가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지 10년 정도 됐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나 시선은 많이 좋아졌다. 한국인 노동자들도 우리를 같은 노동자로 인정해주고 많은 격려를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이나 정부의 인식은 예전과 똑같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다. 재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많이 편찮으시다. 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이대로 이곳을 버려두고 돌아갈 수는 없다. 미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수백만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해줬다. 그러한 혜택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수많은 한국인들도 속해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삶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가 낸 수차례의 진정을 모두 무시했다. 너무나 안타깝다. 한국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해 줬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