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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는 크리스마스 때 가족들도 만날 수 없습니까?"
20일째 농성 중인 이주노동자들의 '슬픈 크리스마스'
허환주 기자kakiru1103@naver.com
 ▶ 이주 노조 직무대행이 이날 나줘줄 선전지를 보고 있다. 그의 앞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아이들의 밝은 웃음이 담긴 신문이 놓여 있었다. ⓒ 전문수 기자
"자, 따라해보세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10여명의 외국인들이 노래를 따라하기 바빴다. 다들 한국어가 서툴고 노래도 잘 모르는지라 더듬거리면서 천천히 노래를 불렀다. 박자도 음정도 가사도 제대로 맞지 않는 노래였다. 하지만 서로들 뭐가 좋은지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찬 맨 바닥에 얇은 스티로폴 하나 깔고 농성을 시작한지 20일째.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여전히 종로 5가에 위치한 한국기도교협회 회관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우린 하나 된 노동자, 우린 평등을 원해, 차별없는 그날을 원해
오전 11시. 농성 중인 기독교회관 7층 한쪽이 시끄러웠다. 다름아닌 이주노동자들이 김남주 시인이 작사한 '함께 가자 이 길을'이란 노래를 배우는데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상당 기간 한국에서 일해온지라 일반 회화는 잘하지만 한글에는 서툰게 사실이었다. 어려운 단어의 의미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지라 노래가 잘 불러지지 않았다. 한국인 선생님은 구절마다 들어있는 단어와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가로질러'였다. 도통 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함께'라든지, '고개' 등의 단어는 단번에 알아들으면서 유독 이 단어만은 여러 차례 설명을 해줘도 알아 듣지 못했다.
"'어기영차'는 한국 사람들이 힘을 낼 때 쓰는 말이구요, '파도'는 바다가 울렁울렁거리는 걸 의미해요. 아시겠죠? 마침내는 영어로 '파이널'을 의미한답니다. '가로질러'는 음...어떻게 설명하지... 영어로 '크로스'있죠? 그거예요. 잘 이해 안가나요? 으음..."
세세하게 설명했다. 단어 뜻을 그래도 모르는 사람에겐 따로 가르쳐주기도 했다.
'함께 가자 이 길을'이란 노래는 2003년 명동성당에서 380일을 넘게 진행했던 농성투쟁을 마감하며 불렀던 노래였다. 당시 농성장 안에 있던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 이주노동자들이 배운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 전문수 기자
4년이 지난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다시 이 노래를 불렀다. 상황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었다.
지금은 슬프지만 언젠가는 기쁜 크리스마스가 오지 않겠어요?
이주노조 집행부 3명이 강제출국 당함에 따라 토르너 림부씨가 이주노조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그는 처음엔 책임감으로 인해 부담감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할 많은 일들과 주위에서 든든히 함께하는 동료들 때문에 되려 자신감이 넘친다고 했다.
그는 집행부를 강제출국시킨 것 관련 "한국이 인권 선진 국가라고 하지만 누구를 위한 인권 선진국인지 잘 모르겠다"며 "불법체류자 딱지는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가슴에 큰 상처로 남는다"고 밝혔다.
2004년 명동성당 농성 이후로 10만명 이상의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출국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2005년 노조를 설립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 이 와중에 법무부에서는 지난 11월 27일 집행부 3명을 몽땅 강제출국 조치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도 이브인지 모르고 지냈다고 했다. 긴장감 때문이었다. 언제 자신이 잡혀갈지 모르는 긴장감이 누구나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긴장감 속에 보내게 만들었다.
 ◀ 이주노동자들을 가르쳐 줄 노래 가사. 한글로 된 노래 가사 밑에 이주 노동자들의 고향 말을 적고 있다. ⓒ 전문수 기자
"굳이 말하자면 슬픈 크리스마스라고 할까요. 별로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불안한 지금 상황을 표현하자면 그렇네요. 하지만 그 안에 행복도 있어요. 지금은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보내지만 언젠가는 기쁜 크리스마스가 오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이라는 행복 말이죠"
아침 7시 30분에 기상, 이후 아침선전전, 교육, 연대 집회, 오후 6시 30분 촛불집회... 밤 11시 취침. 하루 일정이 빽빽하다. 크리스마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노래를 배운 뒤 점심을 먹고 바로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예배를 보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가족 보러 갈려면 브로커에게 1천만원 줘야 하는데 어떻게 가요?
네팔에서 4년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 온 릭밴씨는 '이주노조표적단속,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명동 성당 앞에 서 있었다. 2달 전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검지 손가락이 잘렸다. 봉합 수술을 받았지만 온전치가 못했다. 피켓을 한손으로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회사에서는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말하자 나보고 불법체류자라며 안된다고 했다"며 "화가 너무 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네팔에 살고 있는 가족에겐 다쳤다고 말도 못했다고 한다. 괜히 신경만 쓰고 걱정만 할 거 같아서다.
깨다르씨는 왼손에 깁스를 하고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 역시 2달 전에 일하다가 다쳤단다. 그 역시 불법체류자라며 산재처리를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단다.
그는 연말임에도 고향을 가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지금 신분이 불법체류자인지라 고향에 가면 다시는 한국에 오지 못한다"며 "돈 많이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고생만 하고 아직 돈도 제대로 모으지 못했다"고 말했다.
▲ 피켓팅을 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 이들 앞에는 명동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 전문수 기자
깨다르씨는 6년 전 네팔에서 한국을 찾았다.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받지 못한 임금도 꽤 된다고 했다.
그는 "내가 지금 상황에서 고향에 갔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1천만원의 돈이 든다"며 돈 벌러 한국에 왔지 돈 쓰러 한국에 온건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 브로커들이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으로 들여보내주는 대가로 받는 돈은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보고 싶은 가족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도록 노동비자만 발급해 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명동 성당 입구에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구세주의 성탄을 축하합니다'란 대형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선전물고 피켓팅을 하고 있었다.
세상의 빛인 구세주가 온지 2007년이 지났지만, 추운 겨울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고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농성을 벌리고 있는 이들에겐 아직 그 빛이 도달하지 못했다.
▲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민중의소리
▲ 선전전 중인 이주노동자 ⓒ 민중의소리
▲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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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7-12-25 16:51:42 최종편집 : 2007-12-25 17:22:45 민중의소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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